돌과 낙서 그리고 자유와 낭만을 만나다
돌과 낙서 그리고 자유와 낭만을 만나다』
◎ 긴 여정의 출발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날까지 여러 선생님들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몸 건강히 잘 다녀오십시오. ‘프랑스에서는 개똥을 조심하세요’ ‘좋은 연수되시기 바랍니다’ 등등 이런 선생님들의 격려와 부러움을 받으며 열 두 시간 비행의 피곤함도 잊고 설레는 마음으로 로마 다빈치공항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로마의 풍경은 도시와 숲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정리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띠는 것은 큰 소나무로 솔방울이 어른 주먹만큼 큰 것과 모든 지붕이 같은 색을 한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보다 시차를 일곱 시간이 뒤로 밀어 놓으니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다섯 시 쯤 됐다. 짐을 챙겨 전용버스로 로마시내에 들어가는 길은 어느덧 석양의 붉은 노을이 고대유적의 도시를 고즈넉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일행은 저녁식사를 위해 시내의 음식점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벌써 고국 소식이 그리운지 음식점 카운터에 마련된 컴퓨터로 몰려들었다. 실은 그날이 5.31지방선거가 있는 날이라 더욱 궁금했다. 로마 외곽에 자리 잡은 숙소는 옛 고성의 별장을 개조해 호텔로 사용하는 만큼 시설이 만족하지는 않았으나 주변 경치는 너무 아름다웠다.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시차적응이 않되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하나 새벽잠을 깨운 것은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더 누워있지 못하게 했다. 로마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아침 햇살이 고성과 하늘 높이 솟은 정원수에 가득 비추고 있다. 이곳에서 묶을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 돌의 문화
로마에서 첫째 날 일정에 따라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로마 중심에 자리한 바티칸박물관과 성베드로 대성당 관광이 있었다. 박물관 유적이 길게는 천 년 이상 짧게는 수세기 전의유물들이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었다. 수 세기 수많은 전쟁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지금 것 이렇게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은 문화유적을 사랑하는 국민의식과 잘 관리 결과도 있겠지만 내 생각하기엔 이들에게는 돌의 건축문화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만약 이들의 문화가 돌이 아닌 목조건축문화였다면 수많은 전쟁 속에서 천년 가까운 세월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어쨌든 이들은 이 땅에 살다간 사람들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축복 받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성수기에는 바티칸 박물관과 성베드로대성당을 관람하기 위해 세계 각 국에서 수십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하니 한 편으로 부럽기까지 했다. 어째든 책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수많은 문화유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소중한 체험이었다.
◎ 낙서의 문화
첫 날 다빈치공항부터 로마 시내로 들어가며 어디에나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쓰인 낙서들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지저분하고 보기에도 무질서해 보일뿐 아니라 우리 의식에 사로잡힌 낙서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의미로 거부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내 의식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방문하는 이태리, 스위스, 프랑스, 영국의 어느 곳이든 벽에 쓰인 낙서를 볼 수 있었다. 아마 우리가 가보지 못한 다른 유럽 어느 나라도 이런 현상은 모두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얼마 후부터는 벽의 낙서가 거부감보다는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친근감을 준다는 느낌을 같게 되었다. 오히려 낙서가 없으면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낙서로 인한 부작용과 문제점도 많이 있겠지만 이렇게 온통 도시를 덮을 정도의 낙서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思考의 자유로움에서 기원한 것이었으리라 믿는다.
◎ 역사유적의 문화적 자존심
로마에서 나폴리 가는 길은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와 매우 흡사했다. 실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탈리아를 순방하면서 우리나라 지형과 비슷한 이곳 AUTOSTRADA(A1) 고속도로를 모델로 경부고속도로를 설계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A1 고속도로를 약 3시간 달려 도착한 곳은 중학교시절 읽은 적이 있는 ‘폼페이 최후 날’이란 소설로 잘 알려진 ROME 제국의 도시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폼페이 유적지였다. 향락과 타락으로 신이 분노하여 심판을 내렸다는 소설의 내용을 어렴풋이 더듬어 보았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1미터 가까이 쌓여 도시 전체가 그대로 매몰돼 1500여 년 동안 역사의 뒤편에 사라졌다가 17세기부터 발굴 작업이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니 가히 상상이 어려울 지경이 아닐 수 없다. 폼페이 유적을 돌아보고 쏘렌토로 향하는 길에는 한눈을 팔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절벽과 도시의 아름다운 조화로움과 카프리해의 푸른 바닷가에 해수욕을 나온 연인들의 여유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 思考의 전환
로마, 피란체, 밀라노, 제네바, 파리, 런던, 이런 도시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자유와 낭만 그리고 여유로움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 인상이 깊었던 것은 길가 의자에서, 조그만 상점 앞 파라솔 아래서, 공원 잔디밭 등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모습이었다. 그런가하면 거리 어디에서든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에서 자유분방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모습이 동양의 思考를 가진 내게 처음엔 무척 당황스럽고 거부감마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겐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니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을 더 많이 느꼈다. 내 그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을 거부하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내겐 아무 발전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으로 세대 차이에서 오는 여러 가지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갰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내 사고의 전환이 나의 발전이 아니겠는가! 어째든 9박 10일의 유럽연수는 내 사고의 전환 뿐 아니라 보다 넓은 세계를 바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 준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