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의 선구자들
한 성 준 (인천 용현여중)
최근에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서 핵심 공약인 혁신학교 문제가 교육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 ‘혁신학교’가 지향하는 그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혁신학교’가 어떤 정리된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오랜 교육 개혁의 역사 가운데서 형성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신학교의 개념이 무엇이고, 앞으로 이 혁신학교 운동을 어떻게 펼쳐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혁신학교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학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곳이었다. 물론 세상의 변화와 함께 외적인 여건은 많이 개선되었고, 교사의 질도 많이 향상되었다. 그렇지만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주지 교과 중심의 한 줄 세우기 방식의 교육 내용이나 교장 승진 제도를 중심으로 한, 관료화된 학교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교사 개인 차원에서의 교육 실천이나 수업 전문성 향상 노력들은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교사 개인 차원의 노력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학교 차원의 변화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한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안 학교 운동
이러한 교육적 상황에서 학교 차원에서의 변화를 처음 시도한 것이 대안 학교 운동이다. 1990년도 중반 이후 활발하게 일어난 대안 학교 운동은 공교육의 틀이 지나치게 관료화되고 경직화되다 보니 아무리 좋고 새로운 것이 들어오더라도 금방 왜곡되어 버리는 상황에서 공교육의 바깥에서 교육의 본질에 맞는 교육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고, 이를 통해 공교육이 나아갈 방향과 미래의 교육을 보여 준다는 차원에서 주목받았다.
대안 학교 운동이 시작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대안 학교가 공교육 혁신의 모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충족되지 않고 있다. 물론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대안 학교에게 공교육 혁신을 위한 짐까지 지우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대안 학교는 자신들의 철학을 학교 교육에 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고, 대안 학교의 교육을 공교육에 이식하는 것은 공교육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나와 있는 대안 학교의 학교 혁신의 성과를 공교육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것은 공교육의 책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우학교’와 같이 대안 학교를 운영하면서도 공교육의 혁신을 늘 염두에 두고, 공교육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공교육의 혁신을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은 학교 혁신 운동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학교 운동
대안 학교 운동이 공교육의 바깥에서 시작된 학교 혁신 운동이라면, 2000년 남한산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작은 학교 운동’은 공교육 내에서 시작된 학교 혁신 운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작은 학교 운동은 지역의 작은 학교를 살리되 단지 폐교를 막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교육을 하기를 원하는 학부모 혹은 지역 사회와 공교육 내에서 학교 혁신을 꿈꾸면서 오랫동안 준비된 교사 그룹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특별한 제도적 지원이 없는 현 시스템 가운데서도 학교 혁신을 꿈꾸는 교사들이 집단적으로 그 학교 근무를 지원하고, 이 교사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학부모들 간의 소통을 통해 교육과정의 혁신과 새로운 학교 교육 모델을 만들어 왔다.
이러한 작은 학교 운동은 남한산초등학교에 이어 거산초등학교, 삼우초등학교, 세월초등학교, 송산분교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학교 혁신 모델을 보여 줌으로써 계속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특별히 농산어촌 지역에서 지역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들과 결합되면서 학교가 지역 사회의 중심으로서 그 건강성을 더해 가고 있다. 그리고 교사들의 힘으로 학교 혁신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줌으로 인해 지역별로 이러한 학교를 준비하는 교사들의 연구 모임을 촉발시키는 효과도 가져왔다.
작은 학교 운동은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데서 오는 학교장과 교사들 간의 갈등, 교사 순환 근무로 인한 지속 가능성의 문제 등의 문제를 겪고 있기도 하고, 또 준비되고 헌신된 교사의 부족으로 인해 지역과 학부모들의 요청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내에서 학교 혁신 운동이 가져야 할 핵심 알맹이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부분을 보완해 가야 할 것인가를 보여 주었다는 면에서 학교 혁신 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내부형 교장 공모제
작은 학교 운동이 가져온 성과를 이어받으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나온 것이 ‘교장 공모제’다. 교장 공모제가 논의된 것은 우리 교육이 잘 변하지 않고, 아무리 좋은 제도가 들어오더라도 그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교장(감) 승진 제도를 기제로 하는, 교육청의 학교에 대한 관료적 지배 시스템이라는 인식에서 나왔다. 즉 현재의 교장 승진 제도를 통과한 사람은 교육청을 바라보고 교육청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는 일에 철저하게 훈련된 사람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현 학교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 교장 승진 제도를 통과하지 않은 교사들 가운데 새로운 학교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준비를 해 온 사람들에게 ‘학교 경영 계획서’를 제출하게 하고, 그 계획서와 교장에 대해서 학교 구성원들의 선택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출된 교장의 교사 초빙권 등을 확대함을 통해 학교 혁신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교장 공모제는 참여정부 시절 교육혁신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2007년 2학기, 첫 시범 실시를 거쳐 지난 2010년 1학기까지 6차례 시범 실시되어 왔다. 하지만 교장 승진 제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 교육 체제 가운데서 교장 공모제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이를 무력화하려는 여러 시도들을 직면해야 했다. 정부 차원에서 교장 공모제 실시의 의지가 있었던 참여정부 시절에는 교육부 관료들이 교장 공모제의 유형에 교장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만 지원할 수 있는 초빙형을 집어넣어 가급적 초빙형의 비율을 높이려 하는 시도가 많았다. 그런데 정부 차원에서 교장 공모제에 대한 의지가 없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교장 자격증이 없어도 지원이 가능한 내부형의 비율을 결원 교장의 2.5% 이하로 규정하고, 심지어 내부형 공모제의 개념 자체를 교장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지원하는 초빙형과 섞어 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초빙형 공모제가 교장 공모제의 전부인 것처럼 하는 방법을 통해 교장 공모제를 무력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차례에 걸친 교장 공모제 시범 실시를 통해 교장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 출신의 교장이 48명(9.1%)이나 배출된 것은 우리 교육사에서 획기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공모제 교장 출신 비율
그런데, 교장 자격증을 가지지 않은 평교사 출신이라고 해서 교장 승진 제도를 거친 교장들보다 더 혁신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학교 혁신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교장 자격증을 가지지 않은 평교사 출신 가운데서도 오랫동안 학교 혁신에 대한 꿈을 가지고 준비해 왔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교사 팀을 만들어 연구와 실천을 해 온 사람들만이 나름의 학교 혁신 모델과 교육적 성과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평교사 출신의 교장을 맞은 내부형 공모제 가운데 10여 곳 정도만 학교 혁신의 유의미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내부형 공모제 학교에서의 성과들은 작은 학교 운동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학교 혁신의 모델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이 10여 곳만의 성과만 해도 학교 혁신의 핵심적인 고리가 ‘교장 승진 제도 개선’에 있고, 교장 승진 제도 개선을 통해서 학교를 혁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 것은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작은 학교 운동이 학교 혁신을 바라는 교사들과 지역 사회에 희망의 단초를 보여 주고,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통해 학교 혁신에 대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는 상황 앞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혁신학교’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 교육감들의 ‘혁신학교’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흘러온 이 역사적 흐름을 잘 살피고 이 흐름을 계승 발전시키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학교를 바꾸다
김성천, 박성만, 이광호, 이진철 | 우리교육
교장 공모제를 통해 학교 개혁의 싹을 틔운 세 학교 이야기
한국교육에 희망은 있는가? 탈학교운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지금, 그곳에서 희망의 싹을 찾는 일은 가능한가?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 보내는 답이다.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통해 교장이 된 평교사 출신의 세 분 교장 선생님이 각각의 학교에서 이뤄 낸 변화는 공교육 현장에서도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육’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증거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공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핵심 요건을 몇 가지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분명한 교육철학과 민주적 리더십을 갖춘 교장 선생님과 열정적인 교사들, 그리고 그들이 자유롭게 교육과정을 구상할 수 있는 자율적 공간이다. 그 가운데서도 자율적 공간의 확보는 결정적이다. 그것 없이는 아무리 열정이 있는 교장과 교사라도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우리 가족은 4년 전, 복잡한 서울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 용문으로 이사를 왔다. 우연하게도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해에 교장 공모제를 통해 오신 이중현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는 이모나 삼촌 같은 선생님들의 정겨운 보살핌 속에서 즐겁게 뛰어놀고 자연을 학습하며 신나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중학교 교사 한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행복해하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 우리 부부가 공교육에 얼마나 감동하며 살고 있는지를 말씀드렸더니 앞으로 점점 교장 공모제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나만 행운을 누린다는 사실이 전혀 달갑지 않다. 이 책을 통해 교장 공모제 학교의 개혁 사례가 널리 알려져 그 성과를 이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 오지혜 (배우, 조현초 학부모)
기존의 교장 승진 제도는 교육청이 정한 기준에 맞춰서 승진 점수를 쌓아 온 교사가 교장이 되는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 교장이 된 사람은 다시 관료 체계의 핵심 고리가 되어 학교에 대한 교육청의 지배를 공고히 한다. 『학교를 바꾸다』는 조현초, 덕양중, 그리고 홍동중까지, 교장 공모제를 통해 학교개혁의 싹을 틔운 세 학교 이야기를 담았다. 세 학교는 모두 교육소외 지역에 위치해 있다. 교장 공모제를 통해 일궈 낸 가장 큰 성과는 교사, 학부모, 학생이 교육의 주체로 재탄생한 것이다. 승진 점수를 위한 교사 간 경쟁이 아닌 교사들의 자발적 헌신과 협력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학교개혁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성장하며 학교교육의 주체로 다시 태어났다. 학부모들은 직접 학교장을 선출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학교교육의 주체로 재조직되고 자연스럽게 학교운영의 권한과 책임을 나누어 맡게 되었다. 이들 세 학교는 학생 인권과 자치활동을 존중하고 학생의 의견을 반영한 규정과 학칙을 만들어 간다. 주체들의 자발성과 협력, 참여와 소통을 통해 이 세 학교는 공공적 가치에 기반한 ‘배움의 공동체 학교’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