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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6년(1475) 을미알성방

진가 2011. 2. 27. 21:59

왕이 문조에 행차하여 酌獻禮를 행한 후 명륜당으로 자리를 옮겨 실시한 謁聖試이다.

시험일은 3월 5일(甲寅)이며, 讀卷官은 인산부원군 洪允成, 창녕부원군 曹錫文등이었다.

시험문제는 야인 방어에 관한 제문을 짓는 것으로 策題의 일부를 보면, “고려 때에는 契丹,哈丹, 蒙古가 여러 번 우리 서북지역을 침범하여 피해가 매우 많았으며, 간혹 개경가지 침입할 때도 있었다. 이것은 서북지역의 여러 고을에 성곽이 없어서 그러한 것인가, 아니면 적당한 장수를 얻지 못해 그러한 것인가, 아니면 防戌의 대책이 올바르지 못해서인가, 그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알맞다고 할 수 있는가. 또 우리나라의 북쪽은 야인과 이웃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장성을 다 쌓지 못하고 잇다. 성을 쌓으려하니 民力이 먼저 소모되고, 쌓지 않자니 賊變(적변)이 끊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등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내게 된 데는 이번 알성시를 치르기 한 달 전에 경원지역으로 쳐들어 온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한 편 무과는 문과를 실시한 후 3일이 지난 3월 8일(丁巳)慕華館에서 치렀다. 문무과 출방은 9일(戊午)에 있었다.

- 진윤평 본관: 興德, 거주지: 京, 父名: 陳叔良(진숙량) 외 19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