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산해관

진가 2010. 8. 11. 12:03

개요

산하이관은 "천하제일관"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만리장성 동쪽 끝에서 만날 수 있는 최초의 관문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을 통과하여 중원으로 향하는 것을 입관한다고 하며, 그 외부의 동북지역을 ‘관외’ 또는 ‘관동’이라고 한다. 따라서, 관동주와 관동군의 이름도, 이 관을 기준으로 그 동쪽을 관동이라고 칭했던 것에 유래한다.

[편집] 역사

천하제일관 산해관

한나라 때는 “임유관”으로 불렸고, 수나라수 문제 양견의 오만한 국서에 반발하여, 598년 고구려 영양왕 때의 장군 강이식이 선제 공격했던 임유관 전투의 배경지이다.

명나라 때는 산해위를 설치하고 나서 산해관으로 불렀다. 명나라 말 누르하치, 홍타이지에 의한 만주족의 침입을 몇번이나 잘 방어한 수장 오삼계가 청에 항복할 때까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청나라 성립 후 공식적인 이름을 임유현으로 바뀌었지만, 그 이후에도 산해관으로 부르기도했다.

1931년 유조호 사건(만주사변 발발), 1932년만주국 건국과 계속되는 전화의 확대로 1933년 1월에 관동군이 산해관을 점령했다. 일본군이 산해관을 점령해 북경 공략의 동부 루트가 열리면서 2월에는 열하 작전을 진행하여 열하성을 장악하고 만주국에 병합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