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여양진씨 총후 6세손 산광군 진익룡 음택

진가 2008. 10. 4. 20:03

평지룡 신광진씨 시조묘 (석초 채영석선생) | 카페자료실

2008.10.04 19:59

출처 명륜풍수지리학회 | 햇빛

원문 http://cafe.naver.com/koreapungsu/2662

 

 

포항시 북구 신광면 만석리에 소재한 이명박 대선후보 선영을 찾아 68번 지방도로를 타고, 신광면사무소에서 약 1km 정도를 더 가다보면 도로변 우측에 마치 왕릉을 연상하리 만큼 큼직한 봉분(封墳)이 돋보인 무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무덤 뒤, 도로를 경계로 붉은 벽돌의 담을 둘러 특별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묘소는 신광면(神光面) 토성리에 자리잡은 신광진씨(神光陳氏)의 시조 진익룡(陳翼龍)의 음택이다.


 

 도로변에 소접된 진익룡의 음택

 

묘소 뒤로 장원하게 장막을 두른 낙동정맥의 비학산 산정(山頂)에서 낙맥(落脈)한 연맥(連脈)이 나지막한 들판을 가로질러 야산과 둔덕으로 이어지면서, 때론 은맥(隱脈)이 되어 그 형적을 감추기도 하고, 수 km를 진행하다가 이곳 묘역을 일으키는데, 풍수애호가나 학인들에게 답사코스중의 한곳으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그것은 벌판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교과서적인 평지룡 명당말고도, 교통의 편리함을 구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 자동차에서 내려 한발자국만 옮기면 바로 묘역에 닿기 때문에, 굳이 발 품을 팔지 않아도 평지룡을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원한 국세를 이루는 묘소

 

풍수에서는 산맥(용맥)의 형세 변화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보통 고산룡(高山龍), 평강룡(平岡龍), 평지룡(平地龍)이라 한다.
먼저 고산룡은 그 기세가 급하고 뻗어오는 형세가 웅장하다. 높이 뛰기도 하고, 날면서 달리고,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고, 석화성(石火星)을 이루는 암석덩어리가 높이 솟구쳤다가 다시 낮게 숙이기도 하여, 마치 천군만마(千軍萬馬)가 달리는 모습과 흡사하다. 고산룡은 형세가 활달하고, 봉우리가 단정, 수려해야 하며, 지룡(枝龍)과 지각(枝脚), 요도(橈棹) 등의 곁가지가 많고, 겹겹이 보호하는 산들이 둘러싸여, 뻗어나가는 산줄기가 살아 꿈틀거리는 용처럼 힘차고 발랄해야 길격(吉格)으로 친다.
평강용은 산줄기가 낮게 내려와 형세가 언덕처럼 점점 누그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불구불하고, 비실비실하기도 하며, 마치 산 뱀이 S자로 기어가는 형상으로 행도하는데, 용의 모습은 마치 물길이 이리저리 뻗어나가듯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내고, 완만하면서도 힘이 있어야 하며, 활발하면서도 억세지 않아야 길격이다.
평지룡은 조종산에서 낙맥(落脈)한 용이 문득 그 세(勢)를 다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맥을 잇고 있고, 또, 주룡에서 굴러 떨어지듯 내려와 완만한 형세로 평지를 잇게 된다.
평지룡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미가 실을 뿜어 내듯 실처럼 이어가는 주사(蛛絲), 말 발자국처럼 듬성듬성 둔덕처럼 이어지는 마적(馬跡), 헤엄치는 소의 등이 수면 밖으로 살짝살짝 들어나는 우배(牛背), 실뱀, 거북, 자라, 석량(石梁)의 자취를 남기며, 띄엄띄엄 기맥을 이어간다. 그리고 보이는 둥, 마는 둥한 둔덕이 듬성듬성 솟구치듯 나가면, 기운을 묶는 속기(束氣)가 이어진다 하여, 이 또한 참된 맥이 연결되는 증거로 삼는다.

이곳 묘역에 잠든 신광진씨 시조(진익룡)는 여양진씨 진총후의 6세손으로 어사공파의 자손이다. 그는 고려 충렬왕조에 삼중대광(三重大匡) 평장사(平章事, 정 2품)를 지내고 신광군(神光君)에 봉해졌는데,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여, 신광(神光)을 본관으로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이곳 당판에서 약간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평양지 바람을 맞으며 회원들과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먼저 이곳 음택이 자리한 입지조건은 큰 취락지를 조성하고도 남을 만큼 국세가 광활하고, 비학산에서 낙맥되어 들판으로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산자락들이 평온하기 그지없다. 또한 전방으로 펼쳐지는 툭 터진 시야가 무척 상쾌하면서 멀리 닿는다. 평탄하고 넓은 들판의 조건은 명당의 부(富)를 기약하고, 좌측 언덕바지와 함께, 우측 논두렁이 앞을 휘감으며 청룡, 백호 안산을 만들면서 미미(微微)한 사격(砂格)사이에 자연스럽게 매김된 내명당은 야트막한 논바닥을 이루면서 당판을 감싸안는 듯한 보국(保局)이 평지룡의 기운을 배가시켜준다.
이때, 풍인(風人)들에게 절실하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금방 눈으로 확인되는 현상(現象)에만 의존하지 말고, 미미한 형적(形迹)을 더듬어 어떤 흔적이나 혈적(穴的)을 찾아내는 안력(眼力)을 기르라고 조언하고 싶다. 즉, 껍데기(현상)만 보지말고 본질(本質)을 보라는 뜻이다.

 언덕과 둔덕으로 이루어진 사격

 

이곳 외명당 뒤로 군봉(群峰) 수성체(水星體)로 연이어지는 조산(朝山)은 유순한 모습으로 비학산이 일구어낸 이곳 주혈(主穴)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백성들의 형용이다. 또한 논 이랑으로 낮게 형성된 내명당은 벼가 자라는 계절은 한상 창판수(倉板水)로 채워지고, 지형적으로 내명당 보다 외명당이 높은 입지를 이루면서 조래수(朝來水)가 공급되어 부(富)를 예고하기도 한다.
이곳 묘소의 좌향은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이랑과 둔덕이 만든 내명당수는 우선수(右旋水) 을진파(乙辰破)로, 팔십팔향법의 자생향(自生向)이 되어 자손들이 크게 번창하고, 부귀하며, 아내가 어질고, 자식들이 효도하며, 등과급제(登科及第)하는 자손이 나온다는 향법이다. 그리고 국세가 장원하고 주산 입수룡이 멀어 그 발복이 1000여 년 이상을 끌고 갈 역량을 지닌 혈장이기도 하다.
이곳 형국은 비학산을 출발한 학이 날아서 이곳 평양지로 내려오는 행지비학형(行地飛鶴形)이다.
그러나 완벽한 명당은 없다고 했듯이 이곳 묘소도 결정적인 흠이라면, 당판을 잇는 맥선(脈線) 바로 뒤로 도로가 통과하면서 24시간 내내 자동차의 굉음과 함께, 맥기(脈氣)를 흔드는 바람에, 생기에 동화된 영혼이 제대로 파동을 일으켜 후손에게 전달될지가 의문이다. 아쉬움으로 남는다면 약 20m 정도 뒤로 후퇴하여 도로계획이 되었더라면 하는 여운을 떨치지 못하고, 답사차량에 오른다.

 입맥처 위를 도로가 지나간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북성 박물관에서  (0) 2008.10.19
여양진씨 시조공 숭덕재 경덕단향제  (0) 2008.10.04
덕봉서원  (0) 2008.09.17
[스크랩] 후손의 욕망 담긴 ‘족보’  (0) 2008.09.12
중국 장강 형초문화유적 답사 일지  (0) 2008.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