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석비의 두전

진가 2010. 8. 22. 13:26

 

두전(頭篆)은 석비의 제액(題額)을 말한다. 제액은 번기(幡旗 : 깃발)와 편액(片額)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쉽게 눈에 잘 띄게 하는 표제개념의 명찰(名札)이다. 대부분 전서로 썼기 때문에 전서제액(篆書題額)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줄여 전액(篆額)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서로 쓰지 않았어도 두전이라는 통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제액은 표제가 되는 제목에 해당한다. 그래서 본문의 글씨보다는 크게 쓰고, 자체도 본문과 다르게 전서, 혹은 예서를 사용하며, 해서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본문의 글자보다는 큰 글자를 사용하여 쉽게 분별하게 하였다.
자체(字體)는 전서(篆書)가 대부분이다. 전서는 대전과 소전으로 나누어 사용되었으나 음각(陰刻) 소전(小篆)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해서(楷書)와 팔분(八分)도 많이 사용되었다. 드물게는 행서(行書)로 쓰여 진 두전도 있다. 양각도 있으나 대부분 음각이다. 특이한 경우는 해서와 전서를 같이 사용하여 알아보기 쉽게 한 예도 있다. 조선시대 중기에 이르러서부터는 석비의 전면을 두전 대신 표제개념 형식으로 바뀌어 사용된 예도 있다.

자체와 서체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전(大篆) 두전이 양각(陽刻)으로 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쌍계사진감선사비(雙溪寺眞鑑禪師碑 : 887)崔致遠 篆>가 유일하다. 음각(陰刻)으로 된 것은 <원천석묘갈(元天錫墓碣 : 1670)許穆 篆> · <유석신도비(柳碩神道碑 : 1690)許穆 篆> · <이의배신도비(李義培神道碑 : 1703)李瑞雨 篆> ·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 1709)許穆 篆> · <건봉사영안대사비(乾鳳寺靈眼大師碑 : 1731)李徵夏 篆> 등이 있다. 조선시대의 대전은 허목의 미수전이 대표적이다.

소전(小篆) 두전이 양각(陽刻)으로 된 것은 신라시대의 <문무왕릉비(文武王陵碑, 문무왕때 추정)>, 통일신라시대의 <사림사홍각선사비(沙林寺弘覺禪師碑 : 886)>, 고려시대의 <보제사대경대사비(菩提寺大鏡大師碑 : 939)> · <흥녕사징효대사비(興寧寺澄曉大師碑 : 944)崔潤 篆> · <영국사원각국사비(寧國寺圓覺國師碑 : 1180)> · <반야사원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 : 1125)李元符 篆>등이 있다. 음각으로 된 것은 <고달사원종대사비(高達寺元宗大師碑 : 975)張端說 篆> · <거돈사원공국사비(居頓寺圓空國師碑 : 1025)金巨雄 篆> · <칠장사혜소국사비(七長寺慧炤國師碑 : 1060)閔賞濟 篆> · <법천사지광국사비(法泉寺智光國師碑 : 1085)安民厚 篆> · <서봉사현오국사비(瑞峰寺玄悟國師碑 : 1185)柳公權 篆> · <회암사선각왕사비(檜巖寺禪覺王師碑 : 1377)權仲和 篆> · <태고사원징국사비(太古寺圓澄國師碑 : 1385)權鑄 篆> · <태조건원능신도비(太祖健元陵神道碑 : 1409)鄭矩 篆> · <홍응신도비(洪應神道碑 : 1492)洪興 篆> · <황희신도비(黃喜神道碑 : 1500)安琛 篆> · <정난종신도비(鄭蘭宗神道碑 : 1525)姜 篆> · <송질신도비(宋?神道碑 : 1545)金魯 篆> · <윤은보신도비(尹殷輔神道碑 : 1551)朴公亮 篆> · <정광필신도비(鄭光弼神道碑 : 1562)李滉 篆> · <이초신도비(李 神道碑 : 1573)宋寅 篆> · <허엽신도비(許曄神道碑 : 1582)南應雲 篆> · <조광조신도비(趙光祖神道碑 : 1585)金應南 篆> · <이희검신도비(李希儉神道碑 : 1613)金尙容 篆> · <정엽신도비(鄭曄神道碑 : 1637)金光炫 篆> · <한효중신도비(韓孝仲神道碑 : 1650)呂爾徵 篆> · <민제인신도비(閔齊仁神道碑 : 1668)金壽恒 篆> · <이유겸신도비(李有謙神道碑 : 1669)閔維重 篆> · <장유신도비(張維神道碑 : 1676)金萬基 篆> · <김우명신도비(金佑明神道碑 : 1687)金萬重 篆> · <민유중신도비(閔維重神道碑 : 1707)閔鎭遠 篆> · <건봉사운파대사비(乾鳳寺雲坡大師碑 : 1730)兪拓基 篆> · <김홍주신도비(金弘柱神道碑 : 1742)趙顯命 篆> · <조만영신도비(趙萬永神道碑:1868)高宗 篆> 등으로 음각 소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서(楷書) 두전이 음각으로 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찬지비(之碑 : 통일신라)>가 있고, 고려시대의 <정토사법경대사비(淨土寺法鏡大師碑 : 943)具足達 書> · <정토사홍법국사비(淨土寺弘法國師碑 : 1017)孫夢周 書> · <청평사문수원중수기(淸平寺文殊院重修記 : 1130)> · <용문사중수비(龍門寺重修碑 : 1185)> · <보경사원진국사비(寶鏡寺圓眞國師碑 : 1224)> · <불갑사각진국사비(佛岬寺覺眞國師碑 : 1359)> · <인각사보각국사비(麟角寺普覺國師碑 : 1295)>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보살사중수비(菩薩寺重修碑 : 1683)> · <체화당사적비( 華堂事蹟碑 : 1719)> · <안심사세존사리비(安心寺世尊舍利碑 : 1781)> · <홍차기효자비(洪此奇孝子碑 : 1795)> · <권율신도비(權慄神道碑 : 1861)李裕元 篆> 등으로 일찍 시작되었다. 양각으로는 <운문사원응국사비(雲門寺圓應國師碑 : 1147)>가 있다.

전서와 해서가  같이 쓰여 진 두전은 음각으로 고려시대의 <정토사홍법국사비(淨土寺弘法國師碑 : 1017)孫夢周 書>인데 전서는 소전이고 해서는 왕희지체로 특이하다. 조선시대에는 <박팽년유허비(朴彭年遺墟碑 : 1668)> · <성삼문유허비(成三問遺墟碑 : 1673)> 등이 있다.

행서(行書) 두전은 음각으로 된 것은 고려시대의 <묘향산보현사지기(妙香山普賢寺之記 : 1141)>가 인조의 어필로 효시이다. 

팔분(八分) 두전은 음각으로 <황산서원비(黃山書院碑 : 1664)宋時烈 書> · <창주서원묘정비(滄洲書院廟庭碑 : 1697)金壽增 書> · <윤관묘비(尹瓘墓碑 : 1766)尹東> · <임광묘표(任珖墓表 : 1766)姜世晃> · <권종순절유허비(權悰殉節遺墟碑 : 1878)> · <권율이치대첩비(權慄梨峙大捷碑 : 1892)> • <연제중수비(蓮堤重修碑 : 조선시대)> 등이 있다.

필획이 버들잎 같은 유엽전(柳葉篆)의 양각으로는 신라시대의 <태종무열왕릉비(太宗武烈王陵碑 : 661)>, 통일신라시대의 <쌍계사진감선사비(雙溪寺眞鑑禪師碑 : 887)> · 고려시대의 <비로암진공대사비(毘로庵眞空大師碑 : 939)李桓樞 篆> · <보제사대경대사비(菩提寺大鏡大師碑 : 939)李桓樞 篆> · <반야사원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 : 1125)> 등이 있다. 음각 유엽전은 <실상사증각대사비(實相寺證覺大師碑 : 통일신라)> · <심원사수철화상비(深源寺秀澈和尙碑:893)> · <大老祠碑(大老祠碑 : 1787)正祖> 등이 있다.

필획이 가위모양의 전도전(剪刀篆)은 <남양부부인홍씨신도비(南陽府夫人洪氏神道碑 : 1497)任士洪 篆>가 유일하다.

집자(集字) 두전은 허목(許穆)의 미수전(眉?篆)을 집자한 <정온묘갈(鄭蘊墓碣 : 1700년경)> · <이산해신도비(이산해신도비 : 1819)> 등과, 김수항 전서를 집자한 <이정기신도비(李廷夔神道碑 : 1746> 등과, 이양빙전서(玉箸篆)를 집자한 <화양서원묘정비(華陽書院廟庭碑 : 1716)> · <서명항신도비(徐明珩神道碑 : 1723)> · <박명원신도비(朴明源神道碑 : 1790)> · <서효수신도비(徐孝修神道碑 : 1791)> · <서명형신도비(徐命珩神道碑 : 1791> · <김충백묘갈(金忠伯墓碣 : 1793)> · <남공철묘갈(南公轍墓碣 : 1835)> · <이현서수장자명비(李玄緖壽藏自銘碑 : 1862)> 등이 있다. 팔분의 집자는 <상주황씨묘갈(尙州黃氏墓碣 : 1705년)八分>이 있다.

 

우리나라 석비의 두전은 삼국시대 신라부터 시작되었는데 신라 김인문(金仁問 : 629~694), 통일신라의 최치원(崔致遠 : 857~915) 등이 비음과 두전을 같이 하였다.

고려시대의 두전은 구족달(具足達), 한윤(韓允), 장신원(張信元), 손몽주(孫夢周), 주백기(周伯琦), 석 선진(釋 旋軫), 장단열(張端說), 승린(僧麟), 이암(:1297~1364), 전원발(全元發), 권중화(權仲和:1322~1408)등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의 두전의 대표적인 전서가로는 이언호(李彦浩:1477~1519) · 조연(趙淵:1489~1564) · 채무일(蔡無逸:1496~1546) · 남응운(南應雲:1509~1587) · 오억령(吳億齡:1552~1618) · 김상용(金尙容:1561~1637) · 김상헌(金尙憲:1570~1652) · 김광현(金光炫:1584~1647) · 허목(許穆:1595~1682) · 김수인(金壽仁:1608~1660) · 김수항(金壽恒:1629~1689) · 이정영(李正英:1616~1686) · 김진흥(金振興:1621~?) · 김만근(金萬根:1633~1687) · 민유중(閔維重:1630~1687) · 신익상(申翼相:1634~1697) · 이우(李?:1637~1693) · 김창숙(金昌肅:1651~1673)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소전을 구사했던 명필들이고, 대전을 구사한 이서우(李瑞雨:1633~?), 권규(權珪:1648∼1723), 이만부(李萬敷:1664~1732), 이만기(李萬基), 이징하(李徵夏)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로 남인들이 허목의 미수전을 따랐다.

전서의 참고서로는 신여탁(申汝擢)의 『전운(篆韻)』, 전자관(篆字官)을 지낸 경유겸(景惟謙)의 『전자편람(篆字便覽)』, 김진흥(金振興:1621~?)의 『전대학(篆大學)』 · 『전자운서(篆字韻書)』 · 『동명(東銘)』은 고전 38체로써 도안자체의 집대성이다. 이런 전서는 석비의 두전, 계회도의 화제, 서책제목, 인장 등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참고서들은 당시 전서의 전범이 되었으며, 그가 쓴 책으로 『대학장구(大學章句)』 · 『전해심경(篆海心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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